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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생활/읽고

<메트로>모놀로그 0104 : 샤이한 어른

메트로 모놀로그 120103

 

샤이(shy)한 어른

 

내가 생각하는 괜찮고 멋진 어른의 조건 중 가장 유심히 지켜보는 자질은 바로 ‘샤이(shy)함’이다.

부끄러움을 잘 타는 볼 빨간 소녀나 내성적이고 사색하는 내성적인 청년도 좋아하지만, 

그 이상으로 내가 아끼는 사람은 부끄러움이 뭔지를 자각할 줄 아는 어른들인 것이다. 

어른이 되면 우린 많은 것들을 겪어봤다는 이유로, 혹은 그것들을 무시할 정도로 강한 존재가 되었다고 

착각하는 바람에 어떤 것에 대해 마땅히 부끄러워해야 함을 자각하고 통감할 줄 아는 능력을 곧잘 

소리소문 없이 잃어가고야 만다.

 

샤이한 어른은 애초부터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복합적이고 불완전한 분별력을 가졌다고 

믿는 회의주의자다. 어른이 되었다고 모든 것을 이루거나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쯤은 알고 부단히

남보다 나 자신을 먼저 냉철하게 바라볼 줄 안다. 한 편, 나는 자신이 하는 말에 확신이 가득 찬

어른이 별로 멋지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개는 그 당당함과 자기확신이 자기보다 더 강력한 ‘집단’의 

논리를 답습하거나 자신의 이익에 보태줄 상대의 입맛에 맞춘 억지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샤이한 어른은 강력해 보이는 집단논리에 손쉽게 귀속되기를 허락하지 않고 적지 않게

흔들려 가면서도 독립적으로 자신의 상식과 기준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돌아보는 삶을 선택하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인간 본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인간다워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뭔가에 걸쳐있지 않으면서도 혼자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를 받쳐낼 수 있는 

중심이 곧게 서있다는 것이고 그 중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자유로울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개인’은 이렇게 늘 ‘집단’이 되기에 앞서 개인적 레벨에서의 질적 향상을 필요로 하는데 

왜 그토록 양심과상식과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잃은 지나치게 ‘샤이’와는 거리가 한참 먼 ‘당당한’ 어른들만

눈에 띄이는지 모르겠다. ‘샤이’한 어른과 나이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인생은 참 풍요로워질 수 있을 텐데.

 

글/임경선(칼럼니스트)


출처: http://catwoman.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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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모 대표님으로부터 샤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 면접은 아니고 개인적인 만남이었다)

아마 내가 최종면접=임원면접에서 줄곧 탈락하는 큰 이유중 하나가 되었겠지


대학교 때부터 알바하면서 

여러 가지 사람의 유형을 접해보고 그나마 좋아진 게 지금

여전히 나는 아마 볼 빨갛고 내성적인 소녀 타입에 가까웁지만...

경선 님이 칼럼에서 쓰신 긍정적 의미의 샤이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서른을 맞이해 보아야겠다